진보정당 노선의 폐기가 아니라, 체제전환운동의 세력화

이 글은 지난 2023년 11월 6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이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진보정당들이 지지부진한 상태를 벗어나려면 안과 밖에서 두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안에서는 조직혁신을 통해 지역과 부문의 활력 + 능동적으로 운동을 조직해야 하고, 밖에서는 사회운동이 강화되어 그것의 정치세력화가 좌파정치운동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둘 모두 막막하고, 진보정당 내부 논쟁은 너무 갈등적으로 꼬인 나머지, 혁신과는 무관하게 흘러가곤 한다. 건강한 논쟁이 없고, 입장이 다른 주장들에 대해 계속 혐의를 갖고 이야기하니까 논쟁이 될 리가 없다. 인터넷 커뮤들이 서로를 증오하듯이, 그냥 서로 싫은 것이다.

정의당이나 녹색당 등의 내부 사정에 관심 끄고 살게 된 이유는, 안타깝게도 그 안의 논쟁이 사회운동의 혁신이나 성장과 무관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정의당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근 나온 몇몇 인사들의 주장들은 많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직후 배복주, 박원석, 오현주 등은 당대표 사퇴를 촉구하며 정의당에는 다른 이념과 노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분들이 무슨 노선인지는 알 수가 없다. 자기 노선이 뭔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총선 시기 전술뿐이다. 자신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그 ‘새로운 노선’을 당대표라고 한들 알 수 있을까? 오히려 박원석 등은 정의당 초기부터 정의당식의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에 동조하고 주창해온 장본인 아닌가? 노선 변화를 주장하려면 전 조직적인 자기 반성부터 필요한 게 아닐까?

류호정 의원은 정의당의 실패 원인을 금태섭 및 양향자 같은 보수주의자들과 같이 당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돌린다. 최근 국내 제도정치권에서 들린 이야기 중 가장 황당한 소리다. 정의당과 녹색당의 노선이 꽤나 불분명하게 들리긴 하지만, 금태섭-양향자와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금태섭-양향자는 ‘신자유주의적인 포용국가/복지국가 노선’에 가깝고, 노동권을 확장하는 것보다는 시장주의를 대세로 인정한 채로 노동권을 제한해 발전국가 모델을 갱신하는 산업정책 추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미래가 이미 종언을 고했다는 것을 안다. 대출 이자 간신히 내며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신자유주의 포용국가 모델은 후쿠야마 신드롬식의 겁박일 뿐이다.

조성주 씨는 지난해 정의당 대표선거에서 노동자계급 내 불평등이 노동조합의 경제투쟁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진보정당노선 폐기’를 선언하고 금태섭이나 이준석과의 친화성을 공공연하게 자랑하기도 했다. 그의 지극히 자의적인 주장에 근거한다면, 이런 전향도 영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사회운동과 사회변혁에 대한 기각’을 선동하는 솔직한 전향 선언이니, 사회운동으로서는 대결할 상대인 셈이다.

사회적인 통념에 기댄 정의당 내의 게으른 논법이 지닌 중대한 함정들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한 바 있다. 가령 ‘세번째권력’의 조성주는 “노동조합 구성원들의 소득 수준을 보면, 대부분 상위 20%에 들어가 있어요. 이 사람들의 소득이 계속 올라가는 게 정말 불평등을 완화하는 걸까요?”라고 말한 바 있다. 민주노총 출신의 일부 인사들조차 이런 주장에 편승해 전략 없는 ‘양보론’과 도덕주의적 비난을 쏟아 냈다.

이것의 일관된 특징은 ‘논증이 없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을 볼 때, 조합원 “대부분”이 상위 20%에 들어가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2017년 이후 민주노총에 새로 가입한 조합원 중 40% 이상은 여성이며, 2012년 6만명이던 비정규직 조합원은 2020년 32만명이 됐다. 새로 조직된 단위 중 평균 나이 30대 이하인 노조가 60%에 달한다. 매년 8월에 실시되는 ‘2022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2천173만명 중 정규직은 1천272만명(59%), 비정규직은 900만명(41%)이다. 이 중 노조 조합원은 정규직 241만명, 비정규직 28만명으로 조직된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10% 수준이다. 즉, 민주노총 내 비정규직 비율은 우리나라 전체 조합원 대비 비정규직 비율의 3배다. 더구나 새로 조직된 노동자 대부분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로, 이들은 노조 건설과 투쟁을 통해 기본급 수준을 높였다. 이는 불평등 해소에 기여했다.

최근 OECD 국가들의 소득불평등에 관한 주요 연구들에 따르면, 조직률과 소득 상위집단의 몫 사이엔 역의 상관관계가 유의하게 나타난다. 한국에서 임금 불평등 감소는 1980년대부터 1994년까지 연령·성·학력별 임금격차 감소에 의해 이뤄졌다. 이후에는 기업규모별 평균임금의 양극화로 임금격차가 벌어졌다. 재벌 대기업에 의해 수직계열화된 산업구조에서 기인한 양극화를 노조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통념이 일부 진보인사들에 의해 유포됐다는 점은 황당한 일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류호정 의원 등이 논리적으로 응답하는 바를 들어본 적이 없다. 대신 그들은 계속해서 사회적 통념에 기대어, 특히 보수언론 등을 활용해 자신이 하고 싶은 주장을 이어갔다. 나는 이것이 매우 게으르고 질 나쁜 선동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게으름은 정치주의자들이 그토록 애정해마지 않는 ‘(제도)정치’를 후퇴시키고, 정치적 쟁점을 둘러싼 토론 문화를 붕괴시킨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게임에서 진정한 패자는 말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대신 게으른 선동을 반복하는 정치인들(또는 정치인 지망생들)은 (악명이든 아니든) ‘네임벨류’라는 대가를 얻는다.

지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직후 류호정, 장혜영, 김창인, 오현주, 박원석 등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정미 대표 사퇴를 주장하며, 금태섭류와의 합당 노선을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제기한 것은 번짓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주장이었다. 진보정당의 성장은 민중운동의 성장을 기반으로 하고, 그들의 지지를 통해서야 비로소 자기 토대를 닦을 수 있는데, 정의당은 어느 누가 대표를 맡아도 결코 단기적으로 이 상황을 뒤바꿀 수 없다. 이들이 습관적으로 “금태섭류와 합쳐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그들만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보정당(혹은 진보정당노선, 사회운동노선) 자신의 해결책이 될 순 없다. 백번천번 양보해서 산술적으로 금태섭류와 합치는 쪽이 다른 진보정당들과 함께 하는 것과 조금 더 나은 대안이라고 치더라도, 진보정당이 안고 가고자 했던 꿈이 성장하는 방향은 결코 아니다.

자기 자신의 일시적인 정치적 생존이 아니라, 사회운동/민중운동이 대변하는 몫 없는 사람들의 대안의 가시화가 목표였다면 단기적인 술책들을 대안이라고 자신감 있게 내놓을 순 없을 것이다. 류호정 등의 매우 섣부른 주장이 심지어 주류언론들로부터도 별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 주장이 단기적으로도 장담할 수 없고, 진보정당노선(사회운동과 함께 하는)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심지어 류호정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추후 이준석 전 대표와 제3지대를 주제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 말조차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금태섭류와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혹자는 정의당이 과거 선거에서 했던 이야기나 ‘세번째권력’이 하는 이야기가 대동소이하다고 이야기한다. 아마 같은 사람이 무대 위에서 늘어놓는 공약들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대한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노동 정책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금태섭식의 노선은 노조법 2·3조 개정 따위에 아무 관심이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여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조 양보론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들여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노조는 보다 과감한 조직화를 위한 혁신이 필요하다. ‘전략없는 양보론’이 아니라.)

정의당의 많은 당원들, 특히 위에서 열거한 정치인들은 이런 차이에 대해 거의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한다.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정치주의자였기 때문에, 노동조합운동이 강해지고, 사회운동이 강해지는 것이 진보정당과 대체 무슨 상관인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의 방황과 엇갈림은 대중(운동)을 바라보는 중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경기침체가 만성화되는 국면에서 대중의 역량과 무관한 ‘사소한 개혁’조차도 일어나지 않는다. 금융 권력은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고, 보수적인 정치권력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의 노선을 버려야 한다고 섣부르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사회운동은 그런 세계의 문법을 인정하지 말고, 대중운동의 역량을 키워 다른 대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여긴다. 정의당이나 녹색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 불안하고 판단이 서지 않는 당밖 활동가들에게 이 쟁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저 악다구니는 사회운동이 대안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아주 희미하고 불안하게 남아있는 전통을 무너뜨리는 시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한 달 가까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의당이 제대로 된 입장 하나 내놓지 않은 것은 정의당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 정의당은 10월 11일 이재랑 대변인 브리핑을 내놓았는데,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뻔한, 게으르고 양비론적인 입장이었다. 이후에는 아무 말도 없다. 집회에서도 정의당 깃발은 볼 수 없고, 90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연서명에 참여한 공동성명에는 부산시당과 대덕구위원회 두 지역조직만 서명했을 뿐이다. 나는 이 철저한 무관심이 정의당의 무기력증을 가리키는 하나의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공개된 국민일보의 이준석 인터뷰에 따르면, 창당할 경우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게 가져갈 것”이라며, “비명계와도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금태섭·양향자 신당은 물론 민주당 비명계, 정의당 내의 불만자들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총선 전에 이준석과 금태섭, 조성주, 양향자 등이 다시 나란히 사진을 찍은 신당의 등장을 꽤 빠르게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바른정당보다 못한 결과를 낳을 공산이 크지만, 이런 어이없는 준동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썩 나쁜 일이기만 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들로 가득한 제도정치판의 혼세에 맞설 가장 좋은 태도는 우리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며 밭을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엘리트주의자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겠지만,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건 사회운동 혁신과 강화만이 그 길이다. 물론 당밖의 사회운동은 오랫동안 제도정치와 무관한 흐름을 경과해왔는데, 이는 ‘정치’를 진보정당에 외주화한 후과였다. 하지만 제도정치가 추락한 국면에서 더 이상 ‘정치’가 진보정당에 외주화할 문제는 아니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이는 노조운동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조운동에게 ‘정치세력화’라는 테제의 핵심은 정치의 (진보정당으로의) 외주화가 아니라, 민주노조 정치사업의 대중화 그 자체에 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유의미한 정치운동은 이러한 토대 속에서만 만들어질 것이다. 이제 그런 정치운동을 본격화해야 한다. 저 한심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이 연결하며 ‘체제전환운동’을 사회세력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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